소원을 들어주는 꽃.

 빈민가의 어느 한 누추하고 축축한 집에서,

정적을 깨는 울음소리가 울렸지.


집 안에서는 측은한 표정을 지은 채 두 쌍둥이를 품에 안은 한 남자와,

누워서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잠든 한 여자가 있었어.


그 남자는 아들을 하나 얻어 구멍투성이인 수입을 채워주고 가족을 빈민가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잘 기를 생각이었지만,

쌍둥이는 자매였어.

그의 부인은 영원한 꿈 속에 갇혔고.


그는 쌍둥이를 기를 여력이 없었어.

하지만 그의 마음이 외치지. 이 아이들을 버릴 수 없어. 절대로.

사랑하는 부인을 꼭 닮은 딸들을 절대 버릴 수 없어.

그러나 둘을 모두 기를 수 없다.


딜레마에 빠진 그는 이따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귀족들이 입양할 아이를 찾으러 내려온다는 것이 생각났어.

한명을 입양시키면 다른 한명을 기르고도 남을 돈이 생기겠지만,

그의 마음은 둘의 사이를 가르는 것을 더욱 용납할 수 없었어.


그래서, 둘을 같이 입양시키기로 했어.



×+×+×+×+×+×+×



아이를 받으러 온 양부모는 고민했어.

단 한명만 입양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두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꼭 같이 있어야 한다고 박박 우겼어.


양부모는 두 아이 모두 사랑스러웠지만, 단 한명만 양녀로 들였어.

그리고 다른 한명은 그녀만을 시중드는 하녀로 들였어.


양부모는 미안한 마음에 돈이라도 많이 주려고 했지만, 남자는 웃으며 사양했어.

용암같이 뜨겁지만 달빛처럼 차가운 눈물을 머금은 두 눈을 손의 그림자로 감춘 채.


양부모가 쌍둥이를 데리고 빈민가를 빠져나갈 무렵, 수레 한 대가 분주히 움직였지.


×+×+×+×+×+×+×


양녀의 이름은 리리스(Lyris).

하녀의 이름은 미티스(Mytis).


둘은 서로가 친자매인 사실을 모른 채,

어느 자매보다 한없이 가까워졌고,


둘은 서로가 쌍둥이인 사실을 모른 채,

서로가 닮았다는 것에 즐거워했어.


주인과 종사의 틀을 넘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가 되었어.


그러나 단 하나, 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야.


양녀를 부르는 것은 리리스가 아닌 노크 소리.

하녀를 부르는 것은 미티스가 아닌 방울 소리.


리리스와 미티스는,

서로를 이름불러줄 수 없었어.


×+×+×+×+×+×+×


리리스와 미티스는 휴일이면 마을의 광장으로 놀러가서 많은 것을 구경하곤 했어.


하얀 옷을 입은 네명의 방랑자,

개의 모습을 한 여행자,

녹색 갑주를 입은 모험가,


그리고 오늘은,

눈이 보이지 않는 음악가가 광장에 나와있었어.


그가 현에 손을 올리고, 관에 입을 대고, 막대로 두드릴때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발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음색이 흘러나왔지.

리리스와 미티스도 그 소리에 알 수 없이 이끌려, 어른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의 앞에서 음악을 감상했어.


연주가 끝나자마자 박수가 쏟아지고, 수많은 돈이 그의 앞에 떨어졌지.

사람들이 푼돈을 던지고 떠나는 동안, 리리스와 미티스는 그의 음악을 더 듣고싶어서 그의 앞에 계속 있었어.


음악가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


"제 앞에 계시는 분은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군요."


그러나 리리스와 미티스는 대답할 목소리가 없었지.

정적이 흐르자 그가 말문을 열었어.


"어쩌면, 어떻게 연주의 재능을 얻었는지 궁금한걸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지.


"이 마을 근처의 눈 덮인 산에서 어두울수록 찬란하게 빛나는 것에 소원을 빌었지요. 당신도 그곳에서 바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리리스와 미티스는 같은 생각을 품었어.


×+×+×+×+×+×+×


양부모가 집을 비운 날,

리리스와 미티스는 눈 덮인 산을 향해 남몰래 떠났어.


가파른 산길이 뱀처럼 길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졌지만,

서로를 부르기 위해, 목소리를 갖기 위해,

소원을 향하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어.


지칠 때면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로 장난을 치며 쉬어갔어.

소원을 빌어 목소리를 얻기 전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지.


리리스와 미티스는 산을 오르다가 무언가 돌이나 나무같지는 않은 것이 길가에 나뒹구는 것을 보았어.

행여나 들짐승일까 싶어서, 미티스가 먼저 천천히 다가가보았지.


그것은 사람의 시체였어.

죽고 방치되어 속이 전부 파먹히고 껍질만 남은 흉측한 시체.


미티스가 뒷걸음질을 치자, 리리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러 다가갔어.

그리고 리리스는 뒤로 쓰러졌지.


사람의 시체.

아니,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 만들어진 길.


리리스와 미티스는 덜컥 겁이 났어.

지금이라고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바로 발걸음을 돌렸지.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날씨는 조금만 스쳐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눈폭풍이 그칠 기색 없이 몰아치는 날씨로 변했어.

돌아가는 길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어.


둘에게 남은 길은,

오직 시체의 길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유리조각을 섞은듯이 살을 파고드는 눈바람이 매몰차게 불어오고,

리리스와 미티스는 앞을 가로막는 비람을 가르며 천천히 걸어갔어.


리리스는 서로 옆에 붙어서 가고 싶었지만,

미티스는 리리스가 바람에 맞지 않게 앞장서서 손을 잡고 걸어갔어.


살이 뭉개지는 꺼림칙한 소리를 들으며 시체의 길을 오르던 미티스는 어느순간 손이 무거워진 것을 느꼈어.

리리스가 주저앉아 있었지.


미티스는 리리스를 북돋워주려고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어.

리리스는 얼어가고 있었어.

걸음을 뗄수록, 리리스는 길의 한조각이 되어가고 있었어.


희망을 잃은 눈으로 미티스를 바라보는 리리스는 애써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다가 쓰러져버렸어.


미티스의 마음 한켠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쌍둥이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어.


절대로 떨어질 수 없어.


한쪽을 버릴 수 없어.


그 어느것도 둘의 사이를 가를 수 없다.


미티스는 리리스를 업은 채,

발이 푹푹 빠지는 썩은 시체들을 밟으며 소원을 향해 걸어나갔어.

리리스는 추위 속에도 여전히 따뜻한 미티스의 온기를 느끼며 관처럼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은 꿈 속에 빠졌어.


×+×+×+×+×+×+×


리리스가 눈을 떴을 때,

눈보라는 흔적도 없이 걷혀있었어.


몽환적인 밤하늘과 비단솜같은 눈밭.

절벽 끝에서 나풀거리는,

달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꽃 한송이.


미티스가 리리스를 향해 다가와 생긋 미소를 지었지.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아직 소원을 빌지 않은 것일까.

리리스는 미티스의 부축을 받으며 절벽에 있는 꽃으로 걸어갔어.


그리고 다소곳이 손을 모아서,

염원하던 소원을 빌었지.


우리 둘에게,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해주는, 목소리를 달라고.


소원은 이루어지고,

리리스와 미티스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꼭 껴안았어.

리리스는 빨리 내려가서 부모님께 자랑하자고 하며 기뻐했지만,

미티스는 그저 뜨겁지만 차가운 눈물을 감춘 채 미소만 지을 뿐이었어.


꽃을 뽑아버리기 위해 뻗었다가 상처투성이가 된 손을 바라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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